흑백요리사 프로그램이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저도 우승자 나폴리 맛피아(권성준 쉐프)의 밤티라미슈가 궁금하여 당근거래로 구하기도 했습니다. 나폴리 맛피아는 패기와 실력으로 우승을 차지한 젊은 쉐프입니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제기했는데 하나는 말이 거침없고 예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능프로그램에서는 흔히 자극적으로 말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동양적인 유교문화권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 마련입니다. 또 하나는 그의 팔에 새겨진 문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문신만 보고 배제해 버렸습니다. 실제 그의 모습은 어른을 존경하고, 버려진 고양이를 입양하며, 자기일에 젊음을 쏟는 열정적인 청년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나름의 생각의 틀이 있습니다. 틀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경험이나 교육을 통해 형성됩니다. 우리는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 말을 조심해야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랐습니다.’ 우리의 틀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문신을 한 사람들과의 경험이 우리의 생각에 선입견을 형성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네모난 틀, 어떤 사람은 삼각, 별표, 동그라미 등등 다양한 틀은 가진 사람들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반응은 천차만별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도 나름의 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 환호하던 무리들이 떠나는 장면이 더러 나옵니다. 요한복음 6장, 오병이어 이적으로 주님을 왕으로 모시려했지만 ‘생명의 떡’ 설교 한 번에 수많은 무리들이 떠났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이 떠나는 장면도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예수님이 계셨다는 말씀을 듣고는 주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안식일 논쟁도 같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자신들 나름의 믿음의 틀이 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그 틀에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설교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네모난 틀을 지닌 사람에게 삼각형 설교는 거부반응을 줄 수 있습니다. 반면 삼각형 들을 가진 사람은 은혜받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설교를 어디에 맞춰야할까요? 각각의 틀이 있지만 모두에게 통하는 보편적 공통분모도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핵심을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설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틀에 맞지 않는 경우는 목사의 사견이나 정치적 시각으로 말미암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모든 설교와 가르침이 자신의 틀에 맞으면 좋겠으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틀을 넘어서는 설교를 듣습니다. 성경에는 자신의 틀에 맞지 않아도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 아리마대 요셉, 그리고 끝까지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과 여인들이었습니다. ‘유한은 무한을 품을 수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복종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틀에 주님의 말씀을 끼워 맞추기보다 자신들의 틀을 주님의 말씀에 맞춘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가는 중에 행한 베드로의 고백을 되새겨 봅니다.
“…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