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6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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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주의와 율법 폐기주의

작성자: 권병상 선교사

오늘날까지 신앙에서 “율법”이라는 단어만큼 혼란을 주며 논쟁을 일으키는 단어는 드뭅니다. 같은 로마서 안에서도 한편으로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면,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과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참 모순처럼 보입니다.

로마서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또, 바울의 서신인 에베소서를 읽다 보면 예수님을 통하여 율법이 완전히 폐기됨을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 2:14-15
그는 우리의 화평이시니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반면, 동일한 바울이 쓴 로마서를 읽거나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히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이 두 가지 입장은 하나는 율법주의, 즉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율법 폐기주의, 즉 구원받았으니 율법을 무시해도 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율법’이라는 단어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재조명하는 묵상의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율법은 히브리어 ‘토라’로 ‘가르침’, ‘계명’, ‘지시’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율법’을 떠올리면 우리는 십계명이나 법전, 계명 같은 것들을 생각하며 해야 할 일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단순한 법조항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24장에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 그리고 시편에서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이 기록되었으며 그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도 빌립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다고 하였는데, 이는 율법의 궁극적인 가르침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4:44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너희에게 말한 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시려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11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3:24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율법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그러나 구원을 위한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 한 후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광야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성취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오히려 구원의 조건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도구로 전락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누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누가 죄인인지를 구별하는 법전으로 사용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 사람들을 분간하는 도구로 변질시켰습니다.

신명기 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과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다.

로마서 2:17-19 (새번역)
그런데 스스로 유대 사람이라고 하면서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고, 그분의 뜻을 알며, 율법으로 가르침을 받아 옳고 그른 것을 분간할 줄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스스로 눈먼 사람의 길잡이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의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당시 유대인들이 율법을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율법이 왜곡된 상태에서 구원을 이루려는 것은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고 강조했습니다.

로마서 2:28-29 (새번역)
겉모양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유대 사람이 아니며, 겉모양으로 살에다가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할례가 아닙니다. 오히려 속이 유대 사람인 사람이 유대 사람이며, 율법의 조문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르는 마음의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로마서 5:21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하지만 바울이 율법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율법을 거룩하고 선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7: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바울은 율법을 폐기하려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님을 따라 행하는 자들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 오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셨으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예수님은 율법의 본래 목적을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어느 계명이 크냐고 묻자, 예수님은 율법의 핵심이 바로 사랑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37-40
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사도 바울도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고 하면서 율법의 본래 목적을 상기시켰습니다.

로마서 13:8, 10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율법의 조항들은 구약과 신약에서 다를 수 있지만, 그 본질은 동일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 모두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며,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친구들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요한일서 2: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입니다.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율법의 본질인 사랑은 사람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님을 통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신명기 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생명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로마서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창세전부터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님을 통하여 성취되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랑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에베소서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율법을 법전처럼만 이해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유대교는 율법을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이나, 구원을 이루기 위한 조건으로 변질시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바울은 율법의 본래 정신을 회복하고자 했으며, 그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것입니다.

로마서 8:4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완성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변화될 때에야 비로소 율법의 요구가 성취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은 인간의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자신의 힘이나 의지로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음을 인정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시고, 그 법을 사랑으로 실천하게 하십니다. 결국 율법은 우리를 얽매는 규칙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는 도구입니다.


이 글을 통해 자신의 신앙 생활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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