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교회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새로운 책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미국 웨스트민스터 교수 데이비드 반드루넨의 저서 ‘하나님 나라 두 국민으로 살아가기’(부흥과개혁사) 입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현재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주류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현대 신학의 대세는 ‘신 칼빈주의’입니다. 헤르만 바빙크와 아브라함 카이퍼라는 걸출한 신학자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신 칼빈주의의 세계관은 ‘창조-타락-구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그리스도인은 정치, 사회, 문화에서 세상을 성경적으로 변혁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신 칼빈주의 주장을 충분히 동의하고 지지합니다.
그런데 반드루넨 교수는 다르게 주장합니다. 우리는 ‘변혁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그네’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아무리 성경적으로 변화시킨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반드루넨 교수의 주장도 맞습니다.
둘 다 맞다니 이상합니다.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균형있게 보는 시각이 중요합니다. 개혁신학에서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라고 말합니다. ‘연속성’이란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연장이라는 의미입니다. ‘불연속성’은 이 세상과는 완전히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연속성만 주장하면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똑같이 불완전합니다. 반면에 불연속성만 강조하면 이 세상은 빨리 탈출해야 하는 감옥에 불과합니다.
반드루넨 교수는 불연속성에 조금 더 강조점이 있어 보입니다. 우리를 ‘나그네’라고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신 칼빈주의는 연속성에 조금 더 기울어진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를 ‘변혁자’로 말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서구사회나 한국의 기독교는 박해와는 거리가 멉니다. 평화의 시대에는 ‘변혁’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정교분리’라는 고리타분한 이념에서 탈피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일부는 우파에서, 일부는 좌파에서 정열적으로 활동합니다. 하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고 기독교인의 품격과는 거리가 먼 언변과 행동으로 물의를 빚기도 합니다. 반면에 고난의 시기에는 ‘나그네’에 무게가 실리게 되어 있습니다. 저 역시 신 칼빈주의자로서 ‘변혁’에 조금 더 무게가 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변혁자’와 ‘나그네’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너무 순진한 생각인가요? 저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